검은여름...Black Summer (2017)
후배들과 하우스메이트로 함께 지내던 지현은 술먹고 뻗은 후배들을 두고 아침 일찍 집을 나섭니다.
그날 그모습이 마지막이 된 지현.
허무하게 가버린 지현의 장례식장에서 유독 힘든 표정의 건우.
지현과 건우가 만난 시점으로 거슬러 갑니다.
조교수로 교내 잔업을 도맡아 하면서 짬짬이 영화를 만들던 지현은 자신의 영화에 출연한 배우를 모집하다 건우를 뽑게 됩니다.
이들은 함께 영화를 만들고 다들 형편이 썩 여유롭지 않은터라 한집에서 모여살아요.
지현은 시간이 지날수록 건우에 대한 남모를 애정을 혼자 키워가기 시작하고 은근 슬쩍 호감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풋풋한 두 청년은 함께 영화를 찍고 술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서로에게 교감하게 되고 건우와 지현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게 돼요.
하지만 이들의 관계를 눈치챈 주변 사람들은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고 건우와 지현은 날선 이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힘들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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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부산국제영화제 (2017 BIFF) 한국영화의 오늘_비전에 초청된 영화 '검은 여름 (Black Summer)'입니다.
저예산 독립영화로 제작된 퀴어영화에요.
영화과에 재학중인 학생들을 주인공으로 영화학도의 꿈을 꾸는 이들의 일상을 포착해내면서 차분히 진행됩니다.
지현과 주변인들이 함께 어울려 덤덤한 일상을 보내는 모습들이 자연스럽게 담겨있어 그 자체로도 생동감이 느껴집니다.
마치 실제 감독님의 재학시절을 담아내듯 밑천없이 열정만으로 영화를 만들기 위해 아쉬운 소리도 하고 조언도 해주는 이들간의 교류로 독립영화들이 제작되는 과정의 노력을 넌지시 알게 해주는 계기도 되구요.
지현과 건우의 감정선을 건드는 부분에서도 덤덤하지만 차분히 진행됩니다.
갈등이 고조되면 분위기가 이전과 달리 격앙되어 버립니다.
그들 스스로의 의지와 상관없이 둘의 관계를 눈치챈 지인들에 의해 교내에 아웃팅을 당하게 되고 그의 주변사람들은 이전의 온정이라곤 찾아볼수 없을만큼 매몰차게 이둘을 비난합니다.
그전까지 자연스럽게 흐르던 감정의 조율은 이후부터 작위적인 구성에 의지하게 돼요.
누구하나 예외없이 건우와 지현을 아는 이들은 맹목적으로 비난을 일삼는데 실질적으로 이둘에게 악감정을 가질 타당한 빌미를 가질수 있는 사람은 지현과 건우의 여자친구들입니다.
그외의 인물들은 건우와 지현의 친분이나 인격적인 부분마저 괄시한채 오로지 호모포비아로서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 와중에도 건우와 지현만이 이전의 감정흐름선을 부드럽게 잡고 있습니다.
소수자들의 인권운동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으며 다양한 컨텐츠들에 의해 이들의 입지가 커지고 있는 현대사회의 분위기 속에서 다름아닌 컨텐츠를 제작하고 이를 수용해야 하는 의식구조가 누구보다 커야 하는 영화학도들이 이토록 편협한 사고와 공격적인 태도를 취한다는게 썩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열려있어야 한다는건 아니지만 모든 등장인물들이 이들을 비난하며 마치 사회구조자체가 소수자들을 거부하고 있다는 시선은 이해하기 힘듭니다.
gv때 감독님의 제작동기를 들어보니 나이가 있으신 분의 경험을 듣고 참고하셨더군요. 그래서 어느정도 납득이 되는 부분이긴해요.
애초에 영화의 배경이 90년대나 2000년대 초반이었으면 오히려 이런 보수적인 관점이 설득력을 얻었을거라 생각해요.
인물들의 감정선을 잡는 씬들의 상당부분에서 롱테이크로 화면을 채웁니다.
이는 어떤 장면에선 등장인물들의 감정을 더 효율적으로 끌어내기도 하고 어떤 장면에선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영화 상영후 이원영 감독님과 우지현, 이건우 배우 두분의 GV가 있었습니다.
첫 GV라 그런지 감독님이 유독 긴장한 티가 역력하셨어요. 그럼에도 문답에 진중하게 응해주시는 부분에서 영화에 대한 애착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우지현, 이건우 분도 그렇지만 출연한 모든 배우분들이 극중배역이름을 본명 그대로 쓰셨어요.
배우분들 또한 GV내내 진지한 태도와 성실한 답변으로 알찬 시간을 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