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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큐어드...The Cured (2017)

 

 

 

더 큐어드...The Cured (2017)

 

 

 

 

'메이즈 바이러스'로 지칭되는 좀비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휩쓸게 된후, 혼란끝에 치료제를 발명하게 됩니다.

 

이는 감염자의 75%를 치유시키는 획기적인 기술로 상용화 됩니다.

 

이후에 또다른 문제들이 야기되어버려요.

 

좀비였다가 다시 인간으로 돌아온 이들은 큐어드로 지칭되며, 사회로 복귀한 뒤에 이전의 삶을 영위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비감염자들에게 적대시되는 대상이며 이들과 공존할수없다는 사람들의 항변도 대두되어버려요.

 

큐어드들 또한 치료제로 인간이 되지만 자신이 좀비가 되었을때의 기간을 온전히 기억해내버린다는 점도 갈등의 요소로 작용합니다.

 

새난은 큐어드들중의 한명으로 치료후 다시 집으로 돌아옵니다.

 

메이즈바이러스가 발병된후 혼란했던 시기에 죽었던 형 루크의 집엔 형수인 애비와 애비의 아들 길리언이 기다리고 있어요.

 

새난과 함께 큐어드로 돌아온 코너는 또다른 입장을 표현합니다.

 

감염된후 엄마를 죽였던 코너는 그 광경을 목격했던 아빠에게 비난받고 외면당하며, 변호사였던 직업으로 복귀하지 못한채 청소부란 새직업을 얻은것 또한 오욕으로 받아들입니다.

 

사회로 돌아온 이들은 나름 안정된 삶을 영위하는 듯 보였으나 이들을 반대하는 비감염자들에 의해 핍박받으며 갈등이 점차 번지게 됩니다.

 

코너는 큐어드들과 함께 비밀스럽게 저항세력을 꾸려나가기 시작하고 이들은 사회와 대치하게 되면서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진화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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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렌페이지 주연의 색다른 아일랜드 좀비영화 '더 큐어드 (The Cured)'입니다.

 

영화는 오프닝에 앞서 텍스트로 사건의 정황을 설명해줌으로써 이 영화가 어떤식으로 구성될지를 예측하게 해줍니다.

 

좀비가 되었다가 다시 인간이 되어 돌아온 이들과 비감염자, 더 크게는 이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회와의 대립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어요.

 

기존의 피칠갑하고 긴박한 스릴을 주는 좀비영화들과는 결이 다른 장르이기도 합니다.

 

'웜바디스'나 '파트너오브좀비'같은 영화에서 좀비장르의 변화를 꾀한 아이디어들과 비견될수 있지만 2014년작 '리턴드'를 떠올리게 만드는 구성이 많아요.

 

리턴드의 경우엔 백신이 좀비바이러스의 활성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는점이 이 영화와 설정이 다르지만 감염자들과 비감염자들의 양립하는 상황을 표현하는 점에선 꽤 닮아있습니다.

 

리턴드는 감염자들의 시선도 존재하지만 감염자를 둔 주변인이 주인공이 되어 이들과 사회를 지켜보는 입장을 대변합니다.

 

더 큐어드는 반대로 감염자였던 큐어드들의 시선이 좀 더 많이 주입됩니다.

 

특히 새난과 코너의 입장을 통해 돌아온 큐어드들중에서도 대립하게 되는 상황을 자연스럽게 녹여내요.

 

 

이들이 사회로 하여금 거부받게되는것은 표면적으론 에이즈와 같은 터부시되는 질병감염자와의 갈등을 비유하기도 하지만 성소수자, 사회적 소외계층, 특히 세계적으로 대두되고 있는 난민문제를 진지하게 다루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큐어드는 치료된 후에도 몸에 남아있는 메이즈바이러스로 인해 좀비화된 이들에게 공격당하지 않는다는 설정입니다.

 

 

비감염자들은 큐어드가 좀비가 되었을때 저지른 끔찍한 일들이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은채 복귀한다는 점 외에도 이런 불안감이 전반에 녹아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큐어드는 인간으로 돌아왔지만 오히려 좀비들과 같은 경향으로 분류되게 비춰집니다.

 

치료제가 먹히지 않은, 혹은 치료중인 25%의 좀비들은 백신에 저항력을 갖고 있다는 뜻에서(영화속에선 이러한 직접적인 표현은 없습니다) 레지스탕스로 지칭됩니다.

 

공교롭게도 큐어드들중에서 비감염자들에게 대항하려는 이들이 모여 스스로 레지스탕스가 되는 아이러니 또한 영화가 내포한 사회적 문제를 표현하는 가장 큰 축이됩니다.

 

특히 영화속에서 코너가 등장하는 장면들을 주시해보면 마치 좀비가 타겟을 노려보는듯한 자세와 표정으로 피사체를 바라보고 있게끔 유도하게 만드는 점 또한 흥미롭습니다. 코너로 하여금 큐어드에게 경계심을 갖는 비감염자들의 입장을 일정부분 이해하게 하려는 의도도 숨어있는듯 보이구요.

 

 

가족과 자신이 포함된 부류인 큐어드 사이에서 갈등하는 역할로 등장하는 새난은 후반부에 이르기 까지 자신의 입장에 대해 명백한 방향을 잡지 못합니다.

 

 

그가 숨긴 비밀을 알지못한채 가족으로 받아들여주는 애비에 대한 죄책감과 버려지게 될거란 불안감, 끊임없이 그를 설득하는 코너를 통해 새난이 짊어지게될 부담감에 이입될 여지가 충분히 고려됩니다.

 

이기적인 이념적 대립이 결국엔 각자에게 책임을 묻고 그들에게 무거운 숙제를 안겨줄거라는 경고를 던져줍니다.

 

 

메세지를 위한 장치들이 꽤 잘 배치되어있는 영화이기도 하지만 그때문에 드라마적 요소가 일방적이란 느낌도 있어요.

 

좀비로 감염되었을때의 이들은 자의가 아닌 본능에 의해 피치못한 살인을 했을텐데 이들을 이해하려는 입장이 철저히 배제되어있는점도 그렇구요.

 

흥미로운 영화이긴 하지만 기존의 좀비영화처럼 스릴넘치는 공포장르보다 드라마에 가깝기 때문에 영화를 어떤방식으로 접하고 관람하느냐에 따라 감흥이 크게 달라질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