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극장에서...Cinema with you (2017)
Episode 1. 극장 쪽으로
대구로 이직한지 얼마되지 않은 선미는 매일 똑같은 일상의 반복에 무료해져있습니다.
심지어 그녀의 직장또한 로비에서 인포자리를 지키는 일로, 별다른 업무없이 그저 시간을 때울뿐이구요.
그러던 어느날 그녀의 자리 앞에 붙어있는 쪽지를 발견합니다.
'6시, 오오극장에서 만나요. 기다릴게요'
그녀에게 말거는 이도 별로없는 직장에서 예상치 못한 제의를 받고난후 망설이다 결국 극장으로 발길을 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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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스토리의 에피소드입니다.
영화는 흑백으로 진행되며 초반부터 선미의 단조로운 일상을 차분히 열거하며 시작해요.
서울에서 대구로 내려온지 얼마되지 않았다는 설정외엔 딱히 구차하게 설명되진 않지만 그녀의 일상을 따라가다보면 선미가 얼마나 외롭게 사는지 체감할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녀가 외로움을 토로하거나 동정을 받을만큼 도드라지는 인물도 아니고 그저 우리주변에서 흔히 볼수 있는 평범한 사람이 느낄수 있는 외로움의 무게를 짊어진 정도로 비춰집니다.
함께 일하는 동료가 언제 같이 밥먹자는 말은 화자나 대상자 모두에게 겉도는것처럼 느껴지듯 선미에겐 굳이 누구와 친밀해질 필요성도 딱히 보태어지지 않습니다.
정체모를 누군가가 보낸듯한 쪽지로 하여금 그녀가 행동하게 만든 계기 때문에 그녀가 일상에서 다른 변화를 가지고 싶어하는 욕망이 있었음을 넌지시 알게될 뿐입니다.
극장에 도착한후 잠시 담배를 피우러 인근 골목길을 들어서면서 또다른 구성을 선보입니다.
길을 헤매는 그녀의 동선을 따라 똑같은 길을 계속 맴맴돌게 됩니다.
가까스로 골목길을 벗어나 극장을 다시 찾게되지만 영화는 이미 시작했고, 그녀와 만나기로 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지 못해요.
상영관을 들어가자마자 그녀는 금새 자리를 박차고 나옵니다.
이 파트에서 얼마전에 본 아네스 바르다의 '5시에서 7시까지의 클레오'를 연상시킵니다.
암이 의심되어 진단을 받은후 결과가 나오기 까지의 시간동안 정처없이 파리를 배회하는 클레오를 따라다니며 촬영한 영화처럼 선미는 끊임없이 출구없는 골목길을 방황해요.
사거리에 배치된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는 장면 또한 상당한 기시감이 있습니다.
그녀가 골목길에 들어서면서 마치 영화속에 들어간 인물처럼 표현되는 느낌도 들어요.
공교롭게도 그녀가 상영관에 들어간후 상영되던 영화가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였던 것도 아이러니해요.
그래서 선미는 영화속 인물에게서 골목길을 정신없이 방황하던 자신의 모습이 투영되어 어리석게 보였던 탓에 박차고 나온것일지도 몰라요.
아니나 다를까 상영관을 나온후 쪽지의 정체를 알게되고 웃지도 울지도 못할 반전을 맞이하게 됩니다.
코믹하고도 씁쓸한 결말로 인해 현대인들이 겪는 외로움과 고독을 깊이있게 다룹니다.
흑백으로 된 영상과 고정된 앵글에 담긴 피사체로 인해 영화가 다루는 정서가 더 건조하게 느껴져 인상깊게 남는 에피소드이기도 합니다.
클로징 장면에서 우유를 집는 선미의 가녀린 손처럼 그녀의 옆집사람들 또한 똑같은 모션을 보여주며 외로움은 오로지 선미만의 것이 아닌, 우리 주변인들의 다수가 겪는 공통의 짐이라고 말합니다.
Episode 2. 극장에서 한 생각
정가영감독은 본인의 영화 '영화극장 살인사건' 상영후 관객들과의 대화시간을 갖습니다.
통상적인 관객들과의 대화가 이어지다 뜬금없이 그녀는 자신의 비밀을 고해버리죠.
그러다 관객중 한명이 그녀에게 불편한 질의를 쏟아내어버려요.
갈길을 잃어버린 GV시간에 정가영 감독은 이성을 잃기직전이 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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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소재와 구성의 에피소드입니다.
GV를 소재로한 영화이며 시작부터 감독과 관객들의 GV현장을 실황중계하듯 보여줍니다.
일종의 페이크다큐처럼 보여지기도 해요.
정가영감독이라며 소개하며 등장하는 감독은 실제 정가영 감독이 아니어서 잠시 혼란스러워집니다.
곧 이 GV장면이 영화속에서 도출된 액자식 구성으로 연출되지않았을까하는 예상이 맞아떨어져도 이 영화가 어떻게 마무리될지 도대체 감이오지 않아요.
감독과 관객의 내러티브로 하여금 극중 정가영감독의 캐릭터가 점차 호의적인 인물이 아님을 직시하게 됩니다.
특히 그녀가 극장에 관해 열변을 토하는 장면은 상당한 아이러니죠.
영화를 만드는 업을 하는 사람이 자신은 불법다운로드로 영화보는걸 더 선호하며 극장의 존립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라니, 그러면서 본인의 주장에 대해 합리화하고 죄책감은 어디 저 멀리 던져놓고 온듯한 태도를 보입니다.
그 와중에 본인의 사생활을 토로하며 윤리적인 모순도 드러내죠.
그래서 극중 GV타임은 초반엔 너무 황당해서 웃기다가 점차 위태로운 상황으로 전환되면서 반전을 맞이합니다.
영화속 영화속 영화로 구성된 연출은 꽤 까다로운 방식임에도 이해가 쉬운형식으로 맞춰져있습니다.
비슷한 방식으로는 전혀 다른 장르의 영화지만 '그레이브인카운터2'에서도 선보인바 있어요.
여러모로 재미있는 영화지만 '정가영감독'이 누구인지 어느정도 정보를 알고 봐야하는 접근성의 난이도는 있습니다. 물론 단편영화나 독립영화에 약간이라도 관심있는 분이라면 정가영감독의 영화를 보셨을테니 무리가 없겠지만요.
작년에 관람했던 '조인성을 좋아하세요'때처럼 정가영 감독은 스토리를 어떻게 구성하면 재미있게 전달될지 선천적으로 잘 아는 이야기꾼이라 여겨집니다.
Episode 3. 우리들의 낙원
은정은 갑작스레 연락두절된 직원 민철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 합니다.
민철이 처리하지 못한 일때문에 은정은 회사에서 당장 재촉받고 있는 상황이구요.
민철의 친구를 찾아가 도움을 청해보는데, 평소 그가 영화에 매진하고 있었던 사실을 알게되고 그가 가있을만한 극장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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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편의 에피소드중 가장 평온한 정서를 지닌 영화이기도 합니다.
연락끊긴 민철을 찾아나서는 은정의 소동극은 로드무비처럼 비춰집니다.
민철을 찾아다니다가 그와 연관된 이들과 합류하고, 그들도 민철의 거취에 대해 궁금해하며 각자 다른 목적으로 민철을 찾는데 동참해요.
생산직공장에서 일하는 은정과 민철은 서로 직장동료 그이상의 친분도 없는 상태에서 민철을 찾는 도중에 그가 영화에 취미가 있고 극장을 찾아나서면서 동화적인 정서도 반영됩니다.
정우와 혜진의 대화도중 영화와 관련된 멘트가 나오자 일상에 찌들려 영화와 영 거리가 있어보이는 은정이 이들의 대화에 끼어들면서 은정 역시 민철과 같은 부류의 사람임을 알려줍니다.
그녀가 맡은 임무를 완수할 마무리에 이르게 되면서 뜻하지 않게 민철과 함께 상영관에서 보게되는 영화가 프랑크 카프라의 '우리들의 낙원(You Can't Take It With You : 포털에선 '우리집의 낙원'으로 명시되어있습니다.)'입니다.
영화속에서 민철은 현실에서 도피한듯 보이지만 은정과 조우하게 되면서 이들이 필요했던건 잠시잠깐동안 느낄수 있는 '위로'였음을 알려줍니다. 그래서 영화속 낙원은 영화, 혹은 극장이라는 매개체로 구체화됩니다.
*'너와 극장에서'는 서울독립영화제에서 기획한 프로젝트로 매년 시나리오를 공모해 뽑힌 단편들로 구성하는 형식의 영화입니다.
이번엔 '극장'에 관한 에피소드로 구성되었구요.
로맨틱한 영화의 제목과 달리 달달한 연애사에 관한 이야기가 없었다는 점 또한 아이러니해요.(오히려 이점이 개인적으론 맘에 들었습니다.)
영화를 보고난후 관객들에게 극장에 대한 개인의 추억이나 기억을 떠올리게 해주려는 기획의도였다고 합니다.
*영화 상영후 김태진감독님의 GV가 있었습니다.
유지영 감독님도 참석예정이었지만 일신상의 이유로 김태진 감독님만 참석하셨어요.
김태진 감독님께 다양한 질문들이 오갔는데 상당히 성실히 답변해주시는 모습이 인상깊었습니다. 차분한 달변가 스타일이셨습니다.
영화의전당 인디플러스관에서 관람했는데 30여석 정도되는 소극장규모인데다 GV때 감독님과 관객석의 간격이 가까워서 같은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 하는 친밀함도 들었어요.
특히 김태진 감독님의 '우리들의 낙원'에선 낯익은 배우들이 등장해요.
독전, 7년의 밤, 작년 부산국제영화제때 수상했던 '죄많은 소녀'에도 출연했었던 서현우 분이 정우역으로 등장합니다.
환절기, 검은여름에 출연했고 작년 검은여름 GV때 뵈었던 우지현 분이 지현역으로 출연해요.
감독님의 추가설명에 '극장쪽으로' 에피소드의 주인공인 김예은 분이 김태진감독님과의 친분으로 '우리들의 낙원'에서 엑스트라로 두씬 출연했다고 합니다.
정가영 감독님 에피소드에 대한 질문도 있었는데 김태진 감독님 말씀으론, 정가영 감독님이 준비중인 다음작품이 꽤 재미있을거라며 이번 에피소드와 약간의 연계성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하니 기대해도 좋다고 하시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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