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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셰이프 오브 워터:사랑의 모양...La forma del agua, The Shape of Water (2017)

 

 

 

셰이프 오브 워터:사랑의 모양...La forma del agua, The Shape of Water (2017)

 

 

1962년, 선천적으로 말을 하지 못하는 장애를 안고있는 일라이자는 미국 항공 우주 연구소의 청소부로 일하고 있습니다.

 

매일 어김없이 똑같은 일과와 무던한 일상으로 탈없이 하루하루를 보내요.

 

 

어느덧 그녀의 삶속에 자리잡은 허전함을 스스로 느끼기 시작합니다.

 

어느날 연구소로 발령받은 고압적인 태도의 스트릭랜드가 책임자로 발령받고, 그와 함께 정체불명의 수조가 함께 배달됩니다.

 

정체불명의 존재가 연구소로 보내지고 스트릭랜드는 이를 관리하고 통제하기위해 온거죠.

 

 

우연히 이 생명체와 마주한 일라이자는 묘하게 이끌리기 시작합니다.

 

다른이들의 시선을 피해 물고기의 형상을 한 괴수를 만나러 가는 일이 잦아지고 둘은 점차 교감하기에 이르러요.

 

일라이자는 괴수로 하여금 일상에서 느껴보지 못한 풍족함을 느끼며 그에게 보통사람과 느끼지 못하는 감정 이상을 느낍니다.

 

하지만 연구소에선 괴수를 해부할 계획을 세우게 되고 이를 눈치챈 일라이자는 그를 탈출시키기위해 묘안을 짜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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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리뷰는 스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외적인 정보를 언급하는 부분에 있어서 영화의전당 시네필로 이지훈 대표님의 강의내용을 일부 참고함을 알려드립니다.

 

 

2017년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된 길예르모 델토로의 신작 '셰이프 오브 워터:사랑의 모양 (La forma del agua, The Shape of Water)'입니다.

 

길예르모 델토로 감독 특유의 어둡고 기괴한 정서와 동화적인 스토리가 조화를 이루는 영화입니다.

 

선과 악이 도드라지는 캐릭터구성과 기승전결이 확실하게 구분되는 단순한 구성을 띄고 있습니다.

 

 

평이한 진행과정덕에 영화속 숨은 상징성과 메세지들을 더 심도있게 들여다볼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일라이자를 중심으로 한 주변인들은 각자가 사회의 소외계층의 일부를 맡고 있습니다.

 

 

일라이자와 하우스메이트로 동거동락하는 절친 자일스는 동성애자이며 그녀를 친구처럼 자매처럼 보살피는 직장동료 젤다는 시대배경상 홀대받는 흑인으로 설정되어있습니다.

 

일라이자는 말을 하지 못한다는 장애로 인해 가장 소외된 부류로 취급받습니다. 심지어 스트릭랜드에게 추행당할뻔 하는 여자라는 약자로서의 캐릭터로 비춰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일라이자가 연구소에 포박당해 끌려온 괴수에게 끌리는건 당연한 과정일수 있어요.

 

남미의 아마존에서 포획해 잡혀온 괴수는 현 국제적 이슈중 하나인 난민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리고 인간의 언어를 하지 못하는 괴수는 일라이자와 수화로 대화를 하며 교감하게 되구요.

 

스트릭랜드는 반대로 이들을 통제하고 괴롭히는 악의 근원을 맡고 있습니다. 정부와 권력을 대행하며 모든것을 가졌지만 스스로의 가치관에 묶여 자신의 논리속 비논리에 갖힌 현대의 꼰대같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자신의 실수와 과거의 성과를 저울질해 스스로에게 관대하고 약자앞에서 강한 태도를 지니면서 정작 그가 손에 쥐고 읽던 책제목이 긍정의 힘(the power of positive think)이라는 점을 통해 캐릭터가 지닌 아이러니를 직접적으로 드러냅니다.

 

이들의 중간자입장으로 호프스테틀러박사가 등장합니다. 러시아 출신이지만 미국연구소에서 자신의 정체성에 고뇌를 느끼며 스파이행세를 해요. 그와 동시에 국가에 대한 충성과 과학자로서의 의무, 그리고 인간애의 존엄과 품위속에서 갈등하는 캐릭터이기도 합니다.

 

캐릭터와 스토리의 진행과정을 보면 여러 동화들을 연상시킵니다.

 

인어공주, 미녀와 야수, 신데렐라, 미운오리새끼등의 메타포를 옮겨오는데 그중 미운오리새끼와 상당부분 닮아있습니다.

 

일라이자는 말을 하지 못한다는 신체적 장애를 안고 있음과 동시에 사회적으로 청소부라는 하층민의 삶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그녀를 이끄는 괴수로 인해 엔딩에서 일라이자가 새로운 생명을 얻는 설정은 단순히 신비스런 존재로 인해 판타지적 요소로 마무리된거라 정의할수도 있지만 영화속에서 일라이자에 대한 여러 복선들을 깔아놓습니다.

 

고아 출신이라는 일라이자는 강에서 주워졌다는것과 목의 상처가 아기때부터 있었다고 언급합니다. 목의 상처로 성대를 잃었을거라 환기시키는 스트릭랜드의 대사가 있지만 엔딩과 결부시켜보면 일라이저도 아마 괴수와 마찬가지로 물에서 태어난 신비스런 존재였을거란 추측도 가능합니다.

 

 

천대받던 오리가 백조로 다시 태어나듯 인간의 삶속에서 홀대받던 그녀가 사실은 부족들에게 신으로 추앙받던 존재의 일파였을거라 자각하며 새로운 삶을 찾는 결말은 꽤 뭉클해져요.

 

괴수와 일라이자를 대표한 영화전체를 아우르는 정서는 '사랑'입니다.

 

일라이자를 통해 사랑은 굳이 말을 하지 못해도, 하지 않아도 표현할수 있는 방법은 많고 전달되는것 또한 어렵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들을 연계시키는 매체로 음악과 영화(영상), 춤등이 등장해요.

 

 

일라이자가 살고 있던 집의 1층이 극장이라는 점도 이를 연관시킵니다.

 

말을 못하는 대신 일라이자는 음악을 즐기고 춤으로 표현합니다.

 

그래서 소외된 계층으로 대변하는 그녀와 주변인들은 오히려 이들을 비추는 장면에서 꽤나 밝고 유머러스합니다.

 

색깔로 상징되는 영화속 메세지들도 재미있습니다.

 

물과 미래, 환상, 신비로움등의 이미지로 표현되는 녹색과 현실을 반영하는 붉은색의 대비는 유난히 도드라져요.

 

괴수가 몸을 담구고 있는 물은 영화속에서 파란색이 아닌 녹색으로 비춰지고 있습니다.

 

특이한점은 스트릭랜드로 대변되는 컬러 역시 녹색이에요.

 

그가 입에달고 사는 사탕도 녹색이며 그가 읽던 책도 녹색계열이구요.

 

스트릭랜드가 차를 사러갔을때 그 상징성은 달라집니다.

 

딜러가 그에게 '미래를 대변하는 색'이라며 녹색의 캐딜락을 권하죠. 결국 그는 덜컥 사버리구요. 그의 차를 보고 지나가던 사람들이 환호하고 차에 호감을 보입니다. 이는 그에게 재력 혹은 권력의 상징이자 쟁취할수 있는 결과물에 대한 보상심리를 대변해주기도 합니다.

 

다만 그의 차를 녹색의 캐딜락이라고 칭하는 사람들에게 '청록색'으로 녹색과 다르다고(영화속 대사로는 teal로 언급합니다.) 선을 긋습니다.

 

그가 몸을 담고 있는 정부의 항공우주연구소라는 미래지향적인 관직에 속해있으면서 스트릭랜드의 캐릭터를 통해 그가 갖고 있는 녹색은 괴생명체가 지닌 녹색과 다르다는 것을 말합니다.

 

스트릭랜드가 지향하는, 혹은 소외계층과 반대되는 권력의 상위층, 정부가 반영하는 녹색의 미래라는것이 어쩌면 잘못된 방향으로 나갈수 있다는 경계심을 반추해주기도 합니다.

 

그래서 후반부에 그의 멋진 캐딜락의 앞범퍼가 자일스에 의해 박살나고 찌그러진채 차를 타고 달리는 스트릭랜드의 모습을 보고 그릇된 관리자의 지침이 미치는 영향이 일그러진 미래로 이어진다는 상징처럼 느껴지기도해요.

 

일라이저의 집 현관엔 바깥세상과 이어주는 문이 도드라지는 붉은색을 띄고 있습니다.

 

붉은색은 그녀가 세상과 연결되는 고리이며 그녀가 아직 현실에 있음을 반영합니다.

 

엔딩에 이르러 붉은옷과 구두를 신은 일라이저가 초록빛의 물속에서 괴수와 한장면에 담김으로써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허물어짐을 의미하기도 해요.

 

 

괴수의 이미지는 길예르모 델토로 감독이 어릴때 보고 감명받았다는 영화 '검은늪지대의 생명체(The Creature from the Black Lagoon, 1954)'의 괴수와 정서를 오마주합니다. (우리나라 매체에선 '해양괴물'이란 번역제목으로 소개되어있습니다.)

 

 

셰이프 오브 워터속 괴수 또한 대사없이 쉭쉭거리는 사운드로만 등장하는데 이 괴수의 음성을 길예르모 델토로 감독이 직접 녹음했다는데서 이 영화속 크리처에 대한 애착을 느낄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