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Visages, Villages, Faces Places (2017)
프랑스 누벨바그의 어머니로 칭송받는 아녜스 바르다와 세계가 주목하는 설치 예술가 JR은 55살의 나이차를 뛰어넘어 공동작업을 꾀합니다.
발길 닿는 곳에서 우연히 만난 이들의 얼굴을 담아 벽에 작품을 남기고 이 과정을 영상으로 담습니다.
바르다와 JR은 한적한 시골, 폐광마을, 어촌등을 다니며 순조롭게 계획을 실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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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훈대표님의 시네필로 프로그램을 통해 관람하였으며 본문중 색깔이 부여된 문장은 이지훈 대표님의 강의내용에서 인용하였음을 밝힙니다.
별다른 줄거리를 소개할게 없는 다큐멘터리 영화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Visages, Villages, Faces Places)'입니다.
개인적으론 어려워하는 프랑스 영화중 더 어렵고 낯선 누벨바그장르를 피해왔었는데 공교롭게도 누벨바그의 대표적인물인 바르다의 다큐멘터리를 접할 기회가 생겨 걱정반 호기심반으로 관람하게 되었습니다.
결과는 상당히 만족스러웠어요.
단순히 신구세대의 협업이란 타이틀에만 국한되어 예상했던게 부끄러울만큼 영화는 상당히 심도있고 진중하지만 친밀하게 접근합니다.
접점이 없던 두 명의 아티스트가 서로의 작품에 호의를 느껴 공동작업을 제안하고 이를 흔쾌히 받아들이는 과정부터 서술해요.
이후부터 '인사이드아웃 프로젝트'의 작업과정을 로드무비 형식으로 만들어나갑니다.
사진을 찍으면 바로 현상할수 있게 만들어 놓은 JR의 포토트럭(개인적으로 이 트럭이 가장 신기했습니다)을 함께 타고 다니며 발길 머문곳에 사는 이들을 작품의 대상으로 삼습니다.
즉흥적으로 대상을 삼는듯 보이기도 하지만 이들이 작품을 구상하며 제작하는 과정은 꽤 심혈을 기울입니다.
일상속 군상들을 촬영하며 인터뷰하는동안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이들이 처한 현실과 고민, 사상등을 작품에 최대한 반영하려해요.
평범한 이들을 인터뷰하며 내러티브가 드라마화 되는 연출은 얀 아르튀스 베르트랑의 '휴먼'과 닮아있습니다. 몇몇 인터뷰에서 뭉클하게 감동을 주는 영향력도 비슷하게 느껴지구요.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에서는 기존의 다큐멘터리에서 보지 못한 특이한 점이 녹아있습니다.
바르다와 JR의 동선에 따라 움직이면서 이들이 촬영한 사람들을 인터뷰할땐 최대한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지만 바르다의 작품과 인생관이 점차 부각되다 후반부에 이르러 바르다는 본격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속에 녹여냅니다.
타인들의 이야기를 훑다가 감독 본인의 이야기로 넘어간다는 과정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는 점에서 상당한 노련미가 돋보여요.
특히 작품 전후로 JR과 바르다의 내러티브가 툭툭 튀어나올때는 이 둘의 뒷모습을 비춰주는 장면이 자주 등장합니다. 처음엔 단순히 작품의 대상을 찍을땐 화면 정면을 비추지만 이들은 크리에이터이기에 반대로 자신들을 비출땐 뒷모습을 비추겠거니라고 예상돼요. 하지만 이들의 작품과 영화에 빠져들다 보면 이들이 단순히 우리에게 뒷모습을 '보여주는'게 아니라 그들이 우리와 같은 방향을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더 나아가 필름속 세상을 관망하고 있다는 느낌도 듭니다.
마냥 바르다가 온전히 자신의 이야기를 관객들에게 들려주는 방식이었다면 다소 지루해질법도 했을텐데 중간자역할을 해주는 JR이 영화속에서 바르다 못지 않은 존재감을 차지합니다. 그래서 번역제목에 바르다의 이름을 넣을거면 JR의 이름도 같이 써줘야 하는게 아닌가 하는 의문도 들어요.
둘은 전혀 다른 장르에서 활동한 아티스트로 소개되지만 사실 연계된 컨텐츠로 하여금 서로를 이끌었다고 봐야 무방해요.
바르다는 영화작업 이전에 사진작가로 활동한 전적이 있고 이를 토대로 단편영화를 제작한것이 큰 파동을 불러일으키게 됩니다. 실제로 바르다가 첫 영화를 만들기전 그녀가 본 영화는 4편밖에 되지 않았다고 해요.
영화작업에 몰두하다 2011년 이후엔 미디어를 매개로한 설치미술가로도 활동합니다.
이력만봐도 인물사진을 이용한 설치미술로 유명해진 JR과 협업을 하게 된게 전혀 이상하지 않아보일정도에요.
특히 바르다가 1980년에 제작한 '벽, 벽들(Mur murs, Mural Murals, 1980)'은 로스앤젤레스에 불법체류한 멕시코인들이 만든 벽화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입니다.
벽성애자인 JR이 바르다와 공동작업을 하는데 이미 충족할만한 조건들을 다 갖추고 있는 셈이에요.
바르다는 90에 이른 나이임에도 사람을 대하고 작품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막힘이 없습니다.
JR은 작품에서 느껴지듯 사람들 특히 노인을 대함에 있어서 어떤 허물이나 편견이 없어요.
그래서 둘은 서로를 꾸짖기도 하고 케어해주면서 서로에게 영감을 주는 특별한 관계가 형성됩니다.
JR과 바르다의 조합은 작품을 넘어 둘만의 교감에 있어서도 흥미롭게 비춰집니다.
바르다의 인생에서 뺄수없는 두 남자, 자크드미와 장뤽고다르를 여러차례 언급하는데 JR이 선글라스를 벗지 않는걸 보며 장뤽고다르의 고집스런 성미를 비교하기도 해요.
(TMI *바르다가 지금의 딸을 임신했을 당시 딸의 친부가 바르다를 버리고 도망을 칩니다. 홀로 아이를 낳은 바르다에게 자크드미가 그녀에게 남편과 아이의 아빠가 되어주겠다며 바르다의 기둥이 되어줍니다. 바르다에게 자크드미와의 결혼생활은 큰 힘이 되었던듯 합니다. 하지만 20년 가까이 함께 지내다 자크드미가 동성애자임을 뒤늦게 깨닫고 커밍아웃을 하게 되면서 바르다의 삶에 고비가 옵니다. 자크드미는 이후 동성연인과 함께 살다가 동반자가 에이즈로 죽고, 자크 드미 또한 병환으로 죽음을 목전에 뒀을때 다시 바르다에게 돌아옵니다. 그녀는 자크드미를 죽기전까지 돌보며 그의 마지막 순간을 영상에 담아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요.)
JR에게 투영된 고다르는 출연하지 않지만 마치 영화속에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느낌마저 듭니다.
심지어 휠체어에 탄 바르다와 함께 전시장을 뛰어가며 장뤽고다르의 '국외자들'속 한장면을 그대로 오마쥬하구요.
가장 인상깊은 장면은 JR이 바르다를 영화속 마지막 작품의 모델로 삼습니다.
그녀의 눈과 발을 인쇄해 기차 화물칸에 붙여요.
이는 나이가들어 걷는게 힘들어진 바르다의 무릎과 노안으로 흐릿해진 그녀의 눈을 대신해 먼곳을 다니며 구경하라는 의미로 비춰집니다. 둘은 격의없는 친구처럼 보이지만 JR이 내심 바르다를 얼마나 존경하고 배려했는지 잘 나타나는 부분이기도 해요.
JR이 작품으로 바르다에게 경의감을 표한것에 바르다의 감사멘트가 귓가에 맴돕니다.
'멋진 여행 고마워, J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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